PART II · 세 번째 방 · 일반상대성이론의 극한

블랙홀 — 빛조차 돌아 나오지 못하는
시공간의 웅덩이

일반 상대성이론을 끝까지 밀어붙이면, 시공간이 스스로를 감싸 닫아버리는 지점이 나타납니다. 아인슈타인 본인도 실재를 의심했던 이 극한의 천체를, 2019년 인류는 사진으로 찍었습니다.

§1별의 장례식에서 태어나다

별은 평생 중력(수축)과 핵융합 압력(팽창)의 줄다리기로 버팁니다. 연료가 다한 무거운 별(태양 질량의 약 20배 이상)은 초신성으로 폭발한 뒤, 남은 중심핵이 자신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합니다. 백색왜성을 지탱하던 전자의 압력도, 중성자별을 지탱하던 중성자의 압력도 견디지 못하는 지점 — 알려진 어떤 힘도 붕괴를 멈출 수 없는 그 끝이 블랙홀입니다. 우리은하 중심에는 태양 400만 배의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*가 있습니다.

§2사건의 지평선 — 돌아올 수 없는 강

어떤 천체를 탈출하려면 탈출속도 이상이 필요합니다(지구 11.2km/s, 태양 표면 618km/s). 질량을 아주 좁은 곳에 구겨 넣으면 탈출속도가 광속을 넘는 경계가 생깁니다. 이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이고, 그 반지름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입니다. 지평선은 벽이나 표면이 아니라 시공간에 그어진 편도 티켓의 경계선입니다 — 지나는 순간엔 아무 느낌도 없지만, 그 안에서는 "밖으로 향하는 모든 미래"가 수학적으로 사라집니다.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, 시간이 흐르는 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.

쉽게 말하면 블랙홀은 진공청소기가 아니라 "돌아올 수 없는 폭포"입니다. 상류에선 자유롭게 노를 젓지만, 물살(시공간의 낙하)이 내 배의 최고 속도(광속)를 넘는 지점을 지나면 어느 방향으로 저어도 폭포 아래로 갑니다. 태양이 같은 질량의 블랙홀로 바뀌어도 지구 궤도는 그대로입니다 — 빨아들이는 힘이 세지는 게 아니니까요.

§3블랙홀은 보인다 — 강착원반과 그림자

블랙홀 자체는 검지만 주변은 우주에서 가장 밝습니다. 빨려드는 가스는 각운동량 때문에 바로 떨어지지 못하고 강착원반을 이루며 마찰로 수백만 도까지 달궈져 X선을 뿜습니다. 지평선 바로 밖에는 빛이 원 궤도를 도는 광자 고리가 생기고, 그 안쪽이 어두운 그림자로 보입니다. 2019년 사건지평선망원경(EHT)이 촬영한 M87*의 주황색 도넛이 바로 이 구조입니다. 호킹은 여기 양자역학을 더해, 블랙홀도 아주 희미하게 빛을 내며 증발한다는 호킹 복사를 예측했습니다 — 양자 중력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단서이자, 이 책의 마지막 장(초끈이론)과 이어지는 다리입니다.

스파게티화 · spaghettification

작은 블랙홀에 발부터 떨어지면, 발과 머리에 걸리는 중력 차이(조석력)가 극단적이라 몸이 국수 가락처럼 늘어납니다. 반대로 초대질량 블랙홀은 지평선에서의 조석력이 약해, 이론상 아무 느낌 없이 지평선을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— 다만 다시는 나올 수 없죠.

핵심 정리

  • 기원: 무거운 별의 중심핵이 모든 압력을 이기고 붕괴한 결과
  • 사건의 지평선 = 탈출속도가 광속이 되는 경계 (질량에 정비례)
  • 지평선 근처: 극단적 시간 지연 — 밖에서 보면 낙하자가 영원히 멈춰 보임
  • 강착원반·광자 고리·상대론적 제트로 간접·직접 관측 가능
  • 호킹 복사: 블랙홀도 증발한다 — 양자역학과 중력이 만나는 최전선
EXP.05 — 중력렌즈 관측소r_s 계산 중
45 M☉
관찰 포인트 — 지평선(검은 원)에 가까운 빛일수록 크게 휘고, 너무 가까우면 붉게 표시되며 삼켜집니다. 질량을 키우면 지평선 반지름 r_s가 정비례로 커집니다. 주황 원반은 나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강착원반입니다.
DEEP DIVE — 수식과 역사
슈바르츠실트 반지름Schwarzschild, 1916
$$r_s = \frac{2GM}{c^2}$$
사건의 지평선 반지름. 질량 M에 정비례합니다. 태양이면 약 3km, 지구는 겨우 9mm — 지구를 유리구슬만 하게 압축해야 블랙홀이 됩니다. v=√(2GM/r)에 v=c를 넣으면 유도됩니다.
지평선 근처의 시간 · 호킹 온도극한의 물리
$$\Delta t_\infty = \frac{\Delta\tau}{\sqrt{1-r_s/r}} \qquad T_H = \frac{\hbar c^3}{8\pi G M k_B}$$
왼쪽: r→r_s에서 밖에서 본 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나 낙하자가 얼어붙은 듯 보입니다. 오른쪽 호킹 온도는 질량이 분모라 작을수록 뜨겁습니다. 상대성(G,c)·양자(ℏ)·열역학(k_B) 상수가 한 식에 모두 모인, 물리학의 교차로입니다.
HISTORY — 블랙홀 연표
1783
미첼, "빛도 탈출 못 하는 어두운 별" 개념 최초 제안
1916
슈바르츠실트, 참전 중 장방정식의 첫 정확한 해 발견
1974
호킹, 블랙홀도 증발한다는 호킹 복사 예측
2019
EHT, M87* 블랙홀 그림자 최초 촬영
2020
블랙홀 연구에 노벨물리학상 (펜로즈·겐첼·게즈)